구약의 이사야서는 기독교적 해석에 따르면 서로 다른 두편의 예언서로 나누어진다. 야훼의 심판을 강조한 전편과 달리 메시아인 예수의 출현을 예언한다고 알려진 후편은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의 예언서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것으로 보인다. 후편의 저자를 제2이사야라고 이름 붙여서 굳이 전편의 저자와 구분하려고 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구약의 의미를 신약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정도에서 그치게 하려는 기독교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종류의 문제들을 유물발굴이나 문헌고증을 통해 밝혀내고자하는 전문가들의 노력이 계속 있어왔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결과적으로 구약에 대한 신약의 우월성을 입증하게되는 그러한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각각의 지식조각들의 수집과 해석의 방식은 미리 세워진 총체적 상에 의해서 이미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간단히 말해서 구약이라는 이름 자체가 신약이라는 규정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좌파가 아닌데도 좌파라고 불리는 자들이 있다면 그것이 사이비좌파일 것이다. 사이비좌파가 있다는 것은 사이비가 아닌 좌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좌파가 아닌 자들이 좌파로 불리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좌파라는 옷을 걸치게 만드는 강제적인 조건들이 있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사이비좌파를 부정하는 이유도 있는 것이다. 이런 조건들이 있음에도 좌파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고 기어코 그것을 탈환하려하는 것이다. 좌파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공화주의자,사민주의자,아나키스트 심지어는 테러리스트까지 이런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사실상 그들이 그토록 분개하면서 거덜을 내고 싶어하는 적군은 자본가 또는 자본주의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반대편에 있지않고 오히려 그들과 같은 이름을 가진 바로 옆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 안정된 세력을 확보한 기존정당일 경우에는 더욱 알기 쉬운 이름들을 선택하는데 자유,민주,정의,민중,노동,사회,우리와 같은 단어들이 끝도 없이 조합을 이루며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이러한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왜 이런 이름들로 그들의 깃발을 장식하는 것일까? 이 수많은 단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동어반복을 계속하고있는데 그것은 '당신이 주인입니다'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내용의 암시문구인 것이다. 이런 색색깃발들의 끊임없는 행진이야말로 강대한 자본의 힘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이념도 가장 강력한 이념이 될 수 없고 어떤 이념이 원칙을 고수하면 고수할수록 더욱더 자본의 함정에 깊이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절대적으로 승리하는 이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념이 아닌 이념 곧 기회주의인 것이다. 수많은 이념의 선전장인 의회주의 안에는 기회주의가 영원히 승리하는 사각의 링이 있다. 대다수의 의회주의국가가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란 실상은 기회주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설레발치며 적당히 자본을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이념나부랭이들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고 아주 솔직하게 위대한 자본 그 자체를 섬기기에 그 올곧은 충성심에 합당한 상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이러함에도 자본을 부정한다면 부정할 수 밖에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정하는 자의 의지나 상황에 관계없이 근본적으로 자본이 아닌 것이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자본이 아닌 것이 자본을 부정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본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본 아닌 것을 야훼라 부른다면 자본은 우상인 것이다. '주인은 나다'라고 '나 외에 주인은 없다'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것 그것이 야훼 곧 유일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을 부정한다는 것은 사회주의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것이다. 유일신을 모시는 종교가 여러개 있고 그것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거나 반대로 다시 화합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이미 유일신이 아닌 우상을 모시는 종교인 것이다. 따라서 우상숭배금지는 필연적으로 독재체제일 수 밖에 없다. 우상철폐에는 무소불위의 강제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라는 것은 민주주의적일 수도 있고 자유주의적일 수도 있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의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는 것이라면 이는 아나키즘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사이에서 오갈 때 비로소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때 자본주의,사회주의,아나키즘은 모두 우상 즉 자본의 하수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이 모두 달콤한 주문에 도취되어 도박에 열중하는 동안 뒤에서 판을 벌린 자본은 기회주의라는 타짜를 이용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이윤창출에 나서는 것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어 버린 것이다. 그것으로 나눌 수 없는 것과 나눌 수 있는 것이 다시 나뉘어져 버린 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그 결함을 증폭시키고 결국 파멸에 이를 것이다. 그것을 자본이라 부르던 우상이라 부르던 무엇이라 부르던 단지 이름을 저주하는 것으로는 파국을 막을 수 없다. 사적 소유는 결코 경제학이나 정치학에 통해 학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의 싸움이라는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다. 오직 유일신적인 권력만이 이 불가피한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 야훼는 구원이다. http://blog.naver.com/thesia http://cafe.naver.com/liquidfire # by 테시아 | 2007/01/22 13:20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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